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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study/신문만들기

한국의 예술

                               한국의 예술과 야나기 오네무시의 평론에 대하여 
                                                                                                               손 정 은

한국의 회화는 욕심 없는 자연주의와 솔직 담백함이 그 특징이다.
곧 "자연"의 뜻에 인간의 조형의지를 귀의 시켰던 데서 비롯되어 진다. 중국의 형태위주의 조형과는 달리 한국미술은 자연순리조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설정이 중국보다 훨씬 축소되어 있음으로 해서 그림의 양식 또한 조용한 평상성의 질박 아담하고 온화하다. 중국의 회화는 형태적 완성형에 집착한 인위와 위선의 회화였던 것 같다. 그것이 위엄을 발현시키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한 것이었다면 한국의 회화는 세속 속에 살면서도 모든 형태에 대한 집착과 무게를 다 털어 내 버린 후의 성글고 담백한 무용의 세계이다. 바람이 술술 통하는 "성김"과 미완의 담소한 맛이야말로 사실은 인류의 전 예술이 동경해 마지않는 정신의 경지이다. 혹자들은 중국의 예술을 신의 경지에 오른 과장법이라고 표현한다. 중국예술의 이론서는 마치 무협영화의 한 대목을 보는 듯 과장이 심하다고 얘기한다. 중국의 회화가 부르짖은 자연주의는 결국에는 산수화라는 협소한 의미체계에 이어져 있다. 이 에 반해 한국회화의 자연주의는 심성적 본질적 "자연성"의 체득에서 우러난 것이었기 때문에 훨씬 더 원초적 자연주의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며 인간화되어 있어서 친근감과 편안함이 이를 데 없다.

한국의 예술은 생활정서와 일치되어있는 한국인의 삶처럼 내구성이 강하다.
어떤 목적성에 결부된 꾸미고 치장하는 욕심이나 분별의식을 가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일관되어 있

어서 훨씬 더 순도를 지니고 있다. 한국미술이 전통적으로 중국과의 영향권 내에서 주요한 미술 양식을 형성하여 왔지만 우리의 토착적 미감과의 조화 속에서 한국화 한 것이었다. 고대일본이 비록 대륙의 문화와 접촉한 시간은 매우 짧았으나 중국화가 풍미한 것과는 좋은 비교가 된다.

일본은 섬나라 특유의 개방성과 폐쇄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국의 이익이나 여타의 필요성이 요구되면 전폭적인 개방으로 선회하는 양면성을 가진 나라다. 일본 고대 미술문화는 백제에 의해 "논어"와 "천자문" 전파이후 계속하여 백제문화를 선진으로 하여 영향을 받았다. 1868년 메이지유신이후 18,19세기 서구의 근대적 문화를 수용하면서 전통과의 조화와 변혁을 꾀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수묵화전통은 몽롱체의 전통으로 바뀌어 전개되었다. 일본은 중국과 우리 나라의 예술을 수없이 모방해 나갔다. 우리의 것을 약탈해 갔으며 모방하기 위해 사람까지 끌고 갔다.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여서 변신의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예술에서 어떤 전통성을 찾아볼 수 있을까?
또한 그들이 말하는 일본의 문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 나라의 원주민이었던 아이누족들의 문화를 말함인가?
지금의 일본인, 일본 문화는 누구를 통해서 나온 것인가?

야나기 오네무시는 일본의 예술평론가 이다. 그는 1922년에 발표한 조선의 예술이라는 글에서 조선예술을 형편없이 왜곡 시켜 놓았다.

그는 중국미술을 거대한 땅의 안정성을 기조로 한 형태의 미술이라고 정의하고 일본의 미술은 섬나라특유의 낙천성을 기조로 한 색채의 미술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하면서 유독 한국의 미술에 이르러서는 박해받는 민족의 역사 속에서 홀로 비애의 운명을 짊어져야 했던 비애와 애상의 가녀린 정한을 지닌 선의 미술이라고 애매하고 심정적인 정의를 했다.

우리 나라의 지리적 조건과 자연환경과 국민성을 모두 자신의 좁은 시야에 가두어 두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무시하고 일본인의 입장에서 자의적인 해석을 한 것이다.

그러면 야나기의 역사인식의 왜곡된 점은 무엇인가?
일본인이었던 야나기는 우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훌륭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한 민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감옥 속의 불쌍한 인생을 관찰하는 간수와 같은 오만과 편견의 시각으로 우리민족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와 예술을 평가하고 우리민족의 전체가 희망이 없는 것처럼 평가했다. 그는 우리민족의 정서와 예술 속에 순수하게 접근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왜곡된 글을 썼다. 그의 입장은 식민사관에서 출발했고 지증학적인 편입견에서 자의적인 해석을 했으며 일본의 귀족문화와 한국의 서민예술을 비교했다.

평론전문가가 목적 없이 그런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 민족 문화의 말살을 위한 목적의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국내 문단의 분위기도 역시 삼일운동의 실패와 세기말풍조의 유입에 따른 감상주의와 패배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야나기는 양자를 다른 계층에서 비교하면서까지 우리 문화를 패배주의 정서로 몰아서 우리 나라의 지식인들과 세계 여러 나라의 민족들에게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시키고 우리 민족의 의식을 없애려고 하였다. 이런 글을 발표 한 야나기 오네무시 같은 사람이 탁월한 예술비평가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예술비평은 종합적인 장르이다. 비평이 어려울 뿐더러 이러한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안목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발표한 글에 대한 비판을 마땅히 받아야 하며 예술비평가로서의 자격에도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
그가 최근에 와서는 한국예술을 깊이 이해하게 되어서 한국예술에 대한 그의 평론의 글들이 극찬의 글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술비평가로서의 양심과 책임의식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다.

1910년으로부터 40년에 이르는 우리미술은 발생논리에서 우선 우리의 풍토자연조건이나 미감과 전혀 맞지 않은 것이 많았다. 우리 나라 근세사의 파행성 속에서 행해진 이러한 현상은 아직까지도 정리해야할 부정적 유산으로 남아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많은 연구와 경험을 가진 후에 갖는 안목으로 객관적인 편견 없는 비평을 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평론가들이 필요하다. 우리 나라에는 의식이 깨어있고 자격 있는 평론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재평가 되어야할 문제들을 하나하나 밝혀내어야 한다. (19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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