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겨울-기도/독서치료.미술치료

[서평]사임당의 뜰/탁현규 지금


사임당과 함께 자연 속으로  

 

                                                                                     이야기 손 

 

 

 『사임당의 뜰』을 보고 읽으며 조선 시대의 뜰을 거닐었고 사임당의 삶과 작품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지은이 탁현규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연구원이다. 그가 소개하는 가상 인터뷰는 사임당과 이이, 매창을 만나게 되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새롭게 만난 사임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 화첩 속 그림으로 생명의 메시지 전하는 위대한 예술가였다. 평생 앎을 추구했던 진정한 학자며 교육자였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은 사임당은 그 서재에서 자녀에게 글을 가르쳤다. 열 세 살의 어린 나이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고 아홉 번의 시험에서 장원을 하였던 ‘이이’를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하였을까?

‘사임당의 교육관, 온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은 이성만 발달시켜서는 되지 않는다, 시와 그림을 통한 감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매창'은 사임당의 첫째 딸로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을 고스란히 전해 받았다.

딸과 함께 시와 그림을 짓고 그리고  감상하고 평가하였던 그녀의 삶을 통해 ‘매창’은 학문을 익히고 그림을 그려서 ‘작은 사임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어머니인 사임당은 ‘초충도’를 매창은 ‘묵매’와 ‘수묵화조도’를 전해 주었다.

‘사임당’이 조선 여성화가의 시조라면 ‘매창’은 여성 사군자의 시조라 할 수 있으며 선비 화가의 그림세계로 발을 넓힌 여성이다’

 

  ‘초충도’는 뜰에 사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사임당은 음악적인 강약의 대비와 운율로 그림에 생명을 넣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경물을 세밀하게 묘사하였으며 안정적인 화면 구성법을 연구하고 사생과 연출을 거듭하여 그림을 그렸다. 먹물의 농담과 색의 어울림을 조절하여 사물의 무게, 입체감, 리듬감, 생동감을 살린 뛰어난 화가였다. 원근법을 사용한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크기를 달리하여 가깝고 멀리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고 감상자의 시선을 의식한 뛰어난 구성능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는 모습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는 작품, 꽃도 살리고 나비도 살려 감상자의 상상력을 일으키는 사임당의 작품, ‘초충도’에서 나비는 꽃에 앉지 않는다.

 


  [서과자완(수박과 개미취)]를 보면 각각의 경물이 적절한 공간에 자리하여 안정감과 여유, 편안함을 준다. '삼三'이란 완벽한 숫자로 세 통의 수박은 크기와 농담을 달리하여 입체감이 있고 묵직한 수박과 덩굴줄기의 대비도 뛰어나다. 짙푸르고 굳센 수박밭에 여린 개미취가 피어 여린 날개를 가진 흰나비 두 마리가 사뿐히 날아든다. 나무랄 데가 없는 구성력, 적절한 공간에 자리한 경물은 안정감이 있고 편안하며 여유가 있다. 여백이 넓어도 그림이 된다고 말하는 작가는 그림 아래쪽으로 기어가고 있는 벌레의 희미한 흔적까지 눈여겨보게 한다.

  [계관 길경]을 보고 읽으며 사임당의 마음이 엄마의 기도로 읽어졌다.

  ‘늦여름날 마당에 핀 맨드라미를 보면 아들이 곧 급제할 것 같고

  도라지꽃을 보면 가족 간의 사랑이 더욱 깊어질 것 같다.

  이때 뜰이나 밭에서 개구리가 꽥꽥 울어대면 더위도 저만치 물러가겠지.’

 

  ‘창조적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앞선 사람의 성취를 기반으로 삼는다. 누구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지 않는다,’(폴 존슨[창조자들]중에서)

  사임당의 ‘초충도’는 후대의 화자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오늘날의 세밀화가 사임당의 ‘초충도’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사임당의 뜰』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며 가상 인터뷰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오늘날에도 가슴에 새기며 추구해야 할 훌륭한  예술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1.그림은 그리워서 그리는 것,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은 절실함이 되어 작품에 쏟아졌고 삶에 힘이 되었으며 훌륭한 작품으로 남겨졌다.

  2.감성이 따뜻해지는 바탕은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애정이다.

  3.그림이란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노래한 세상을 남들과 같이 바라보기위한 예술이다. 자신만의 좁은 내면의 세계에서 벗어나야한다.

  4.대가들의 그림을 만나고 임포(모방)와 사생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사랑받고 감동을 주는 그림, 시간이 지나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사임당의 뜰』을 읽으며 숨은 그림을 찾듯이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옛 사람들이 동식물에 부여했던 의미를 알아가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었다. 또한 당시 화가들이 사용했던 안료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옛 그림의 흰색 호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하여 색이 검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임당의 그림에는 관서나 인장이 없다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한다.

 

『사임당의 뜰』은 사임당과 매창의 화첩 속에서 살아난 생명들을 찾아내고 알리는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본다. 먹이를 향하는 작은 생명체의 본능과 생명의 순리를 깨닫고 뜰에 사는 작은 생물에서도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보았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아파트의 베란다처럼 작은 공간을 각종 식물이 가득한 작은 뜰로 바꿔 놓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모두 사임당의 후손들이다. 아침마다 화분에 물주는 정성이 아직 남아있는 한국인은 우리 시대의 ‘초충도’를 그릴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