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봄-study/신문만들기

여성은 남성보다 비 창조적인가?

                                       여성은 남성보다 비 창조적인가?
                                                                                                          손 정 은

  철학자, 작곡가, 화가, 과학자 등 과거의 뛰어난 인물 중에서 여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인류가 걸어 온 교육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에게 주어진 교육의 기회의 부족이 여성을 퇴보시켜 열등한 존재로 머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교육이란 것은 여성에 허용되지 않는 닫혀진 문이었다.
  음악 사전에 등장하는 천재적인 작곡가의 이름에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가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서양음악사와 음악현상을 받아들였는가? 음악사에서 여성이 받아온 차별과 불평등에 관해서, 남성에 의해 왜곡된 여성 음악가들에 대해서 또한 여성의 능력과 재능을 경시하는 남성 우위의 사회체제를 파헤쳐 봄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서양음악사와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여성과 음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음악에 촛점을 맞추어 여성 차별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 여성이 음악 분야에서 눈에 띄게 남성 밑에 존재해야만 하는가? 여성 해방운동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테오도르 폰 히펠(Theodor Gottlieb Hippel)은 1994년에 여성의 예술 활동이 그렇게 부진했던 것은 여성에게 너무나 불평등한 사회적인 여건이 주어졌기 때문이지 여성속에 내재한 '본성'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 여성에게 음악교육이 어떻게 행해져 왔는가?
  14세기까지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금지되었었다. 또한 루터는 여자가 이상적인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 소위 여자의 타고난 운명을 따르는 것을 그의 도덕적인 지주로 삼았다. 여자가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는 일도 가끔 있었지만, 그 수준은 교회에서 회중 찬송을 같이 부를 수 있는 아주 낮은 수준이었다.
17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부르조아 계급의 남성들은 아내를 자신들의 부속물로 여기고 기호품으로서의 음악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여성은 여자수가 꼭 필요한 데에만 음악활동에 참가할 수 있었다.
  18세기가 되자 사회전체는 '가족의식'에 의해 사로 잡혔고, 절대왕정 체제로 향하는 정치발전을 통해 남성에게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강조시키고 여성의 법적 지위를 하락시켰다. 의무교육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여자교육의 진보는 보이지 않았고, 여교사는 사범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1810년 독일 음악학교의 교육계획표를 보면 여자의 음악교육은 유치원 어린아이 수준의 교육만 하면 되고 남자는 실제로 지금의 우리 나라 대학생들이 배우는 수준까지 고급화시켜 단계별로 전문적인 교육을 시켰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젊은 여성의 "독서에 대한 강한 집착"을 위험하다고 간주하였다.
  "소녀들의 막 뻗으려고 하고 있는 재능을 억누르고 아직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자각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재능을 억누르는 것이 교육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음악교육자의 입장이었다

1789년 올림페 드 구즈(Olympe de Goues)는 「여성 권리 선언」을 발표하고 남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특권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처형대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19세기에도 여성은 넘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이유와 아내와 어머니라는 "여자로서의 본분"때문에 교육이 제한되었는데 기계가 많은 노동을 대신하게 되자 최초로 주부 본래의 의미가 무너지게 되었다. 여성의 경제자립이 시작되면서 정신적인 무장이 강화되고 그것이 제1차 여성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여성에게 논리적 사고의 방법을 훈련할 것, 근대교육을 받을 기회를 줄 것, 그리고 상공업에 종사하기 위한 실업교육과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보통교육이 필요한 보편적 교육원리를 적용하도록 결정했다. 19세기에 비로서 여자 교육을 위한 건전한 현실주의가 도입되었고 "모든 교양있는 인간에게 바람직한 지식"으로서 노래뿐만 아니고 음악 전반에 걸쳐 실시되었다.

그러나 19세기말까지 여성은 대학 내에 출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음악 도서관 이용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다음에는 성차별 사상과 음악에 관해서 살펴보자.
남성만이 마음대로 천재가 될 수 있고 남성들의 작품만이 신성 불가침하다는 사상을 확고히 가지고 있었다. 재능을 개발시키는 것은 어떤 일정한 사회적 조건 아래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성에게는 저지되어 왔고 완전히 무시당해 왔으니, 여성아 학문이나 예술 분야에 남성과 동등하게 참여하려고 해도 그 노력은 허사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이다.
세실리아 렌트마이스트(C cilia Rentmeister)는 여성에게는 예술세계에 참여하는 길이 막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예술의 비유가 거의 언제나 여성인가를 밝히는데 공헌했다. 즉 남성은 그 악마적인 성욕을 이성의 힘을 통해서도 자제할 수 없는 것을 알고 그 때문에 할 수 없이 여성과의 의존관계에 들어간다. 그런데 남성들은 여성들이 그들을 '유혹'해서 성의 포로로 만들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성욕을 이기지 못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다. 피츠너는 다른 사회계층과 여성을 예술세계와 격리시키는 악랄한 계급차별과 성차별 사상을 가지고 있을 때 천재 숭배 사상으로 이러한 이론을 정당화하였다. 억압된 성교육으로 인하여 병적인 의식을 가진 남성들은 성생활을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지 못하였고 그들의 성 에너지는 여성을 공격하고 차별하는데 쓰여졌다. 이러한 남성들은 지금까지 여성들이 그들의 분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였다. 예술을 오직 남성을 위하여, 여성의 침입으로부터 지키려는 것과 동시에 여성을 영감의 대상으로 계속 묶어 우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예술가의 여성에 대항 심리적 의존은 여성 찬미로 이어졌다. 에바리거는 「서야 음악사와 여성」이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서 여성 친미는 남성의 이익을 위해 강요된 것이며 "여성의 주체적 개인적 가능성을 부정하고 창조의 과정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여성'찬미'의 형태를 빙자한 폭력행위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을 여성의 출산 능력에 대해 남성이 품고 있는 선망, 또는 질투심이 남성 심리의 메카니즘을 결정하는데 커다란 요인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여성 심리학자인 카렌 호니(Karen Horney)는 남성들의 창조성의 원동력은 자신들이 생명의 탄생에 부수적으로 밖에 관여할 수 없다는 열등감에서 기인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여성이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소외되어 온 것은 여성의 출산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남성들은 여성의 임신 및 출산 능력에 대한 그들의 막연한 불안을 그 능력과 동등한 것으로, 즉 문화적 창조를 통해 보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상이 문화적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남성은 심리적으로 위협을 받기 때문에 그와 같은 위험한 행동을 억압해야 했었다.
사실 실존했던 여성들 중에는 이러한 억압으로 고통 당했던 여상들이 많이 있었다.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며 작곡가였던 클라라 슈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구나 슈만의 이름으로 발표된 가곡 중에는 그녀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코지마 바그너 또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바그너는 그녀가 없으면 작곡을 못한다고 고집을 부리며 그녀가 자신의 음악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 멘델스죤의 누이였던 파니헤젤도 여자라는 이유로 음악을 포기해야만 했고 그녀의 작품 중에서 동생의 이름으로 발표된 곡도 있었다. 알마 말러-베르펠의 경우도 남편인 말러로부터 작곡 활동을 금지 당하고 일생을 재능이 넘치는 남편을 위해 헌신한다는 사명에 강요당하며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케리어 우먼」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은 남녀의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즉 여성도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 성과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한 끝에 남성과 대등하게 '성공'한 것처럼 조이는 일부 여성들의 성취가 곧 자기들만의 힘으로 획득한 것으로 주장하면 은연중에 다른 여성들 즉 수많은 제약에 의해 능력과 의욕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남녀 불평등에 대해 불평하는 여성들을 억압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왜 이제까지 창조적 작업이 그토록 힘들었는가?
여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조직에서 소외되고 활동이 제한되었을 뿐 아니라 창작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여러 가지 기능을 배우는 일이 막혀 있었다. 여성은 남성 중심 사회에 순응하도록 교육되었으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구속에 의해서 창조적 활동으로부터 소외당해 당해 왔다.
오늘날에는 제도상의 구속이 많이 해소되었지만 심리적 장애는 여전하다. 법률과 제도상의 평등을 실현시키려면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다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 심리적인 압박과 예술 문화분야에서의 자아 실현을 방해하는 수많은 외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도 어린 시절의 사회화 과정에서부터 음악교육을 위한 악기선택, 즉흥 연주 등의 연주능력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또 작업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휘 작곡 또는 편곡과 같이 지금까지 여자에게는 친숙하지 못했던 전문 분야에도 여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남성도 스스로가 자신들의 태도를 반성하고 사고 방식을 전환하여야 한다. 우선 남성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는 감정적인 여성 편견과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정된 남녀의 역할 분담을 유동화하여야 한다. 여성은 다른 문화 영역과 똑 같이 음악 분야에서도 남성에 의해 숭배와 굴욕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잃어 버렸다. 남자들이 새로운 여자의 이미지를 만들 때까지, 어떠한 사회 질서가 나타나서 우리들에게 '남녀동등'을 부여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여성은 자발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

이 논술문을 준비하면서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참고 서적을 많이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왜냐하면 얕은 수준에서 주장할 수 있는 내 지식보다는 다 중요한 꼭 제시해야할 사실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계기를 통하여 여성의 능력과 재능을 경시하는 남성우위의 사회 체제를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과 실존했던 인물을 통해서 사실에 근거하여 파헤쳐야 할 의무를 느꼈다. 그러나 지면관계로 많은 내용들을 삭제하는 아쉬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여성들은 기존 사회의 부권적 성격을 분명히 인식하고 스스로 탈피해 나가도록 노력해야한다. 결국 남녀 모두 만족하고 서로에게 존경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해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녀 평등 교육관을 제시하는 것으로 남녀평등이 실현된다고 믿는 것은 옳지 못하다. 여성의 진로를 가로막는 사상적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여성 앞에 가로 놓여진 부당한 입장에 대한 일반의식을 보다 예민하게 느끼면 여성 스스로의 힘을 신뢰하는 용기를 앋을 때에만 비로소 성취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여성 자신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소속할 곳을 마련하도록 용기를 북돋우어 주어야 한다.(1999.6)


'봄-study > 신문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주제  (0) 2009.06.03
  (0) 2009.06.03
신문만들기  (1) 2009.06.03
신문활용교육지도안3  (0) 2009.05.29
이야기 신문 3호  (0) 2009.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