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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study/신문만들기

복녀의 아비에게.

복녀의 아비에게.
 
  당신은 선비의 꼬리라 하였소? 가난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복녀를 길렀다고 하였소? 그런데 왜 복녀를 그 늙고 게으른 홀아비에게 팔아 버렸소? 당신에게 자녀란 무엇이었소? 어떻게든 치워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장애물이었소? 당신은 복녀를 판돈 팔십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당신은 결국 복녀를 치워 버린 것이 아니고 미운 사위로 인하여 힘들었겠소이다.
 
  복녀의 삶을 보면서 가장 먼저 당신에게 분노를 느꼈지만 그 시절엔 당신의 한 일이 그리 손가락질 받을 시대도 아니었을 것이요. 나는 당신의 행동에 분노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소. 해마다 늘어가는 미혼모의 문제와 늘어나는 해외 입양아 문제가 바로 그것이요. 그 뿐이겠소? 자녀를 거절하고 버리는 사람은 오히려 양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소. 왜냐하면 그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꾀하고 너무나도 잔혹한 범죄까지 저지르는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요.

   나 역시 학창시절엔 이 작품을 아주 경멸하는 마음으로 읽었소. 자식을 팔아 그 돈을 챙긴 아비, 몸을 팔아서 받아오는 돈으로 먹으며 빈둥빈둥 노는 남편, 돈으로 성을 사서 잠깐 환락을 즐기는 왕서방, 빈곤이 어느 정도로 사람을 타락시킬 수 있는가? 등장인물 모두가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인물이었고 사건이나 배경이나 인물의 설정 모두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글을 작품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소.

  복녀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인정해 줄 수 없지만 복녀는 정말 열심히 살았소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서 처절하게 살아나간 사람이요. 그녀에게는 더 이상도 더 이하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요. 벼랑끝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의 입장을 이해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요.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복녀의 처절한 삶에 가슴이 아프오.

   내가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당신도 나도 가정을 가지고 자녀를 기르며 살아가는 부모의 입장에 바로 서자는 것이요. 당신이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되는 죄악을 저질렀다고 흥분하고 분노하면서 정작 나는 내 자녀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부모의 의지대로 살아주기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그가 독립된 인격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고 있는지?
 
  오늘 복녀의 삶을 보면서 파렴치한 복녀의 아비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또한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됨을 다행으로 생각하오. 내가 바른 부모의 모습으로 바로 서게 된다면 당신도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오.
 
                                                       2006.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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