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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문화공간/단순한 호기심

설원랑과 미실, 칠숙은 미실의 심복이었을까?

 

지금 선덕여왕 드라마는 어디까지 왔을까요?

진평왕은 병이 위중하고 벌써 노년이 된 듯 합니다.


선덕여왕이 즉위할 날도 멀지 않았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미실은 몇 살일까요?

미실은 진평왕보다 25살 정도 많은데요.

진평왕은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때까지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드라마의 흐름으로 봐서 ....

미실의 실제 나이는 90세정도......되어야 되는 상황이네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미실은 58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은 소설일 뿐이죠.


칠숙이 난을 일으킨 해는 631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드라마는 630년경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여집니다.


미실이 죽은 해는 606~607년으로 생각됩니다.

진평왕은 미실이 죽었을 때 40살이었습니다.

진평왕은 632년 정월, 66세에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제위기간이 52년 6개월....아주 길었군요.

물론 미실이 죽은 이후 26년이나 더 왕좌를 지켰습니다.


선덕여왕이 왕이 된 것도 632년이었습니다.

미실이 죽은 것은 606년....이미 26년 전의 일이지요.

그 때 김유신은 몇살이었을까?


김유신은 595년에 태어났습니다.

595년경 미실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역사서를 연구한 자료에 나와있네요.

그렇다면 미실이 죽었을 때 김유신이 11살???

과연 김유신과 미실은 대면한 적이 있을까요?


김유신은 18세인 612년에 풍월주가 되었습니다.

물론 미실은 죽고 없었으며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자
만호태후는 하종의 딸 영모와 혼인시켰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김춘추는 미실과 만난 적이 있을까요?


김춘추는 603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미실이 죽었을 때 김춘추는 세살???

미실은 말년에 영흥사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러니까....아마도 미실과 김춘추는 만나지 못한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군요.

물론 미실은 역모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진흥왕이 30세정도 되었을때 미실은 이미 실권을 잃었으니까요.


그러면 선덕여왕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난은 무엇일까요?


631년 칠숙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난을 일으킨 사람은 칠숙과 석품입니다.

진평왕 제위 53년(631년) 5월에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반란을 꾀했으나 왕이 이를 알고 칠숙을 잡아 목을 베고 9족을 멸하였으며 석품도 잡아 죽였다고 합니다. 화랑세기에서는 선덕공주가 주도적으로 칠숙의 난을 다스렸다 하고 삼국사기에서는 칠숙의 난을 진압한 이가 진평왕으로 나옵니다.

미리 알고 진압했다고 기록되어있군요.


역사자료에 의하면


천명은 원래 왕위계승자였지만 진평왕이 덕만공주를 총애하여 그녀에게 양보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명은 덕만의 입장을 고려해 월궁에서 물러나 살았다고 하는군요.
 


선덕여왕 드라마에서는 천면공주는 죽고 없는데요.
역사자료에 의하면 천명은 왕궁을 떠나 용수와 함께 살며 족강을 했기 때문에 천명부인이라 하며 후에 용수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천명과 춘추를 동생 용춘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명부인은 노년에 산에 궁을 지어놓고 김용춘과 조용히 살며 여생을 마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왕이 된 배경에는 몇 가지 다른 입장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덕만이 후계자로 정해진 것은 진평왕의 비 마야왕후가 죽은 후 승만부인이 왕비로 책봉되었을 때이며 승만부인이 아들을 하나 낳았으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기 때문에

화백회의의 지지를 얻어 후계자로 정해졌다고 전하기도 하고

덕만이 왕위계승에 도전했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용춘이 풍월주로서 큰 업적을 이룩하자 진평왕은 용춘에게 양위하려고 천명공주에게 양보하라고 하였다. 이에 천명공주가 양보하고 출궁하였는데 선덕공주가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선덕 공주는 남자라는 이유로 양보할 수 없으며 용춘이 자기의 사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덕만은 천명과는 달리 왕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미실은 실권을 30년 정도 쥐고 있었다고 봅니다.

565년~566년초
미실이 진흥왕에게 색공을 드리고 그 대가로 왕후궁 전주가 되다.

588년 미실의 아들 하종이 11세 풍월주가 되었습니다.

591년~596년
미실은 만호태후에게 밀려 세력이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596년~603년
13세 풍월주는 용춘이었는데 .
그 시기부터 미실의 존재는...

내정과 외정에서 미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미실은 그 이후에 무엇을 했을까요?

미실은 말년에 영흥사에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설원랑은 풍월주를 그만두고 미실을 따라 영흥사로 갔다고 합니다.

 


설원랑...그는 누구일까요?

설원랑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미실을 만나 섬겼습니다.

그 후 그녀의 수족이 되어 40년 동안 그녀에게 순애보를 간직한 남자입니다.


설원랑이 밤낮 병석을 지키다가 죽자
미실은 아픈 몸을 일으켜 슬퍼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속옷을 설원랑의 관에 함께 넣어 장사지내도록 했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그의 사랑을 받아들여 구천에서나마 부부애를 맺자는 언약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는군요.



사다함을 보낸 후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그녀의 순정이 40년동안 지극정성으로 보필한 설원랑에의해 열렸다는 것이죠.



미생은 설원랑과 친구라고 합니다.

미생은 609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과 미생과 설원랑은 모두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로 인정해 주어야 하지만....
선덕여왕 때문에 신라의 역사를 뒤적여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날씨가 무척 추워졌는데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