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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 5

2009. 6. 3. 19:32 | Posted by 이야기손

 좋은 성품,

  다음 요소는 매우 뚜렷한 것으로 ‘좋은 성품’입니다.

  ‘사랑은 함부로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요소보다 더 두드러진 것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쁜 성품을 과히 해로울 것이 없는 연약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품을 단순히 천성의 약함 혹은 가정적인 결함이나 기질상의 문제로만 말하고 인격을 평가해 버립니다. 깊이 참작해야할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분석하는 바로 이 말씀 속에 성품이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되풀이해서 ‘나쁜 성품’은 인간성 중에서 가장 파멸적인 본질 중에 하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나쁜 성품’의 특성은 그것이 덕이 높은 사람들의 비행이라는데 있습니다. 보통 고상한 인격에서 볼 수 있는 단점입니다. 여러분은 쉽게 골을 내거나 성급하고 과민한 성격만 아니라면 거의 완전한 남자나 여자분 임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처럼 좋지 못한 성품과 도덕적인 인격이 양립한다는 것은 가장 이상하고도 슬픈 윤리적인 문제의 하나입니다.

  죄악에는 두 가지 큰 종류가 있는데, 즉 육체상의 죄악과 성격상의 죄악입니다. 탕자는 전자에, 그 형은 후자에 속하는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세는 이 둘 중 어느 편이 더 나쁘냐고 하는 것에 대해 아무 의심도 반성도 없이 탕자에게 낙인을 찍을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요? 우리에게는 서로의 죄악을 정할 수 있는 거울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보다 야비하다거나 보다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말일뿐입니다. 보다 고상한 성격의 잘못은 보다 낮은 성격의 잘못보다 더욱 용서받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사랑을 어기고 저지른 죄는 배나 더 비열한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 황금에 대한 탐심, 술주정 등 어떤 죄악의 형태도 ‘나쁜 성품’보다는 사회를 더 비 기독교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비참하게 만들고, 신성한 관계를 파괴하며, 가정을 방치하고, 메마르게 하고, 어린이들로부터 꽃을 빼앗아 가는 등등 보람 없는 비참함을 자아내는 것에 대해서는 사랑의 힘만이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탕자의 형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는 도덕적이고 열심히 일했으며 참을성이 있고 충성스러웠습니다. 그의 선행에 대해서 모두 우등 점을 줍시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의 대문 밖에서 뽀루퉁해 있는 이 어린애 같은 사람에 대해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읽게 됩니다. 아버지와 종들, 손님들의 행복에 끼친 영향은 물론 탕자에게 미친 영향을 판단해 봅시다. 소위 천국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얄미운 인격의 소유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탕자들이 천국 밖에 머물러 있는지를 아십니까?

  탕자의 형의 눈썹에 모인 천둥 구름을 성품으로 분석해 봅시다. 그것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질투, 분노, 자만, 무자비, 독선, 까다로움, 고집, 무뚝뚝함, 이와 같은 것들이 어둡고 사랑 없는 마음의 요소들입니다. 각도를 달리해 보면 이 모두가 나쁜 성품의 성분입니다. 그와 같은 성격상의 죄악을 판단할 때 우리가 생활하는데 있어서나 타인들과 공동생활을 하는데 마치 육체적인 죄악보다 나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이 문제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성격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천국 안에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을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사랑을 몸소 지니고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왜 성품이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성품에 대해서 특별히 명백하게 말씀드리는 이유이기도합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시금석이며 징후이며 밑바닥에 있는 사랑하지 않는 성질의 폭로입니다. 그것은 내부에 있는 고질병을 입증해주는 간헐열이며 속에 있는 썩는 것을 탄로시키기 위해 가끔 표면으로 나타나는 거품이며 마음 놓고 있을 때에 무의식중에 나타나는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소산물의 표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백 가지의 가공스럽고 비기독교적인 죄악의 번개 같은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인내심, 친절, 관용, 예절, 비 이기심 등의 결핍은 성품의 한 가닥 번쩍임 속에 상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품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근원에까지 파고들어 마음 제일 속의 성질을 뜯어 고쳐 노염에 찬 성미가 저절로 죽어 없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씨라고 하는 것은 신 액체를 밖으로 내는 것만으로 사랑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위대한 사랑 새로운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을 채워 넣음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만이 우리의 영을 꿰뚫어 사랑스럽게 하고 정결케 하며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오직 이것만이 악한 것을 뿌리 채 뽑을 수 있고 화학적인 변화를 이를 수 있으며 새롭고 거듭나게 하여 속사람을 원 상태로 복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지력도 시간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하셨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촉박합니다. 이것은 생사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자신을 위해 간곡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더 나으리라.’

  즉 사랑하지 않으려면 살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주 예수님의 신중한 판결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살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1979년에 이 글의 복사본을 구했습니다. 활자 상태가 아주 나빴고 책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 좋아서 친구들과 함께 타자를 쳐서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표현이 약간 어색한 부분도 생겼지만 그 이후에 홈페이지를 옮길 때마다 게시판에 계속 올렸습니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에 대한 말씀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용이 너무 많아서 나누어 올렸지만 모두 연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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